akive

검색
친구에게 알려주세요.
me2day facebook


“이것은 얼마입니까?”

한 젊은 작가가 갤러리를 물신화의 성당으로 바꾸어 놓는 과감한 시도를 보여 주었다. 노동의 소외가 야기한 화폐에 대한 집착이 노골적으로 표출되는 공간으로 갤러리를 변형시킨 것이다. 이곳에서 관람객은 데카르트의 인식론을 버리고, 바바라 쿠르거의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믿어야 할 것이다. 사실 갤러리라는 공간은 문화생활을 영위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작품이라는 특별한 상품이 거래되는 낯선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단순히 산술적 가치로 평가된 작품만 거래되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문화적 수준과 갤러리와 아트 딜러의 예술에 대한 인식 및 품격이 같이 교환되는 것이다. 작품이라는 상품을 구입하는 행위는 단지 적절한 가치를 지불하고 상품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 기저에 깔리는 모든 유 무형의 행위 및 인식들도 같이 구입하는 것이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문화적 가치를 산술적 가치로 변형시켜 가격을 매기고 그것을 유통시키는 행위는 예술을 넘어,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일용품들에서도 나타난다.

소위 명품이라고 하는 상품들은 단지 그 상품의 기능적 측면뿐만 아니라 그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사회 문화적 가치까지 포함된 가격을 달고 시장에 나온다. 그 가치라는 것은 공허한 것일 수도 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번 전시에서 재미있는 것은 숍으로 변형된 갤러리에서 유통되는 상품은 가격으로 유통될 유형의 작품이 아니라 임의로 책정된 수치가 작품으로 치환되었다는 데 있다. 진열장에 고급스럽게 진열된 가격표는 이번 전시의 중심 작품이고 이것을 작가는 작품으로서 유통시키고자 한다. 뒤샹의 소변기가 작품으로 유통되는 과거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별반 놀라울 일도 아니다. 그렇지만, 모든 노동이 수치로 평가 받고 이것이 화폐라는 상징화된 수단으로 보상받으며, 노동의 결과물인 상품이 가격이라는 상징화된 가치로 책정되며 그러한 라벨을 달고 유통되는 현 상황에서 가격 자체를 우리 앞에 드러내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작가 유영호가 주목하는 것은 가치가 상징화된 상품과 화폐가 아니라 가치의 명시된 수치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숫자가 아닌 가격 자체를 유통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이고 어찌 보면 황당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수치들만 유통되는 시장은 엄연히 존재한다. 증권거래소도 그렇고 선물거래소도 그렇다. 더욱이 외환딜러는 수치 자체를 거래한다. 그렇다면 수치가 거래되는 당위성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상품은 더 이상 도구적 효용성만으로 평가 받지 않는다. 그 상품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그 가치는 배가된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가치라는 것이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적-문화적 가치들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분명히 그 상품의 도구적 효용성에서 그 가치는 출발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도하게 확장됨으로써, 다른 맥락을 부여 받고 이로써 우리는 상품 자체뿐만 아니라 그 상품이 갖고 있는 문화적 가치까지 맹신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상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가치가 부여된 그 상품의 가격을 소비하는 것이고 그 증거물로 상품을 획득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에 멈추지 않고 개인적 경험을 고백하면서 노동의 문제를 언급한다. 작가는 유학생활에서 공장노동자로 생활했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는 자국민뿐만 아니라 제3세계 노동자들이 있는 공장에서 지금의 노동은 훗날 예술가로서 보여줄 노동을 위한 잠재적 노동임을 동료들에게 밝힌다. 동료들의 부러운 듯한 눈빛과 스스로 갖게 되는 노동에 대한 이중적 입장에 대한 자괴감으로부터 그는 예술창작을 위한 노동과 상품제작을 위한 노동 사이의 괴리감을 발견하 게 된다. 이 괴리감이라는 것은 일반 공장 노동자가 갖는 문화적 맥락과 예술가가 예술창작이라는 노동에서 갖는 문화적 맥락의 상이함에서 출발한다. 물론 공장 노동자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노동의 건강성을 간과할 수는 없지만, 문화적 맥락에서 작가 스스로는 이중적 입장을 갖고 있었음을 밝힌다. 마르크스는 노동의 소외를 언급하면서 소외되지 않은 완벽한 노동의 모습을 예술가의 창조활동에서 발견한다. 마르크스까지 가지 않더라도, 예술에 대한 신화는 예술행위와 일반노동을 다르게 구분해 왔다. 그러나 이미 예술창작의 신화는 깨어진 지 오래 되었고, 예술행위 역시 노동의 다른 형태에 불과한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노동에 대한 허영과 사회에서 야기되는 상품에 대한 허영 자체를 고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이번 전시는 노동과 상품, 가격과 소비의 모든 메커니즘에 대한 어떤 고백일 수 있으며, 작가 자신의 실험을 위한 숍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얼마입니까, 외국어를 배울 때 인사말 다음에 배우게 되는 이 문구가 의미하는 것은 단지 가격을 묻고 상품을 구입하고자 하는 일차적 의미를 넘어 어떤 문화적 맥락을 우리에게 언급하고 있다. 작가가 오픈한 프라이스 숍(Price Shop) 역시 작가 스스로는 사회의 생산과 소비 시스템에 대한 혁명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 메커니즘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화두일 수도 있다.

김장언 / 문화연구




여러분 이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으세요? 작가정보 페이지 이동
친구에게 알려주세요.
me2day facebook

댓글(0)

현재 0byte/ 최대 500 byte

등록

Quick Page Up